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 규모로 성장한 이커머스 기업. 이 놀라운 성장 뒤에는 급격한 조직 확장이 가져온 혼란이 있었습니다. 저도 처음 '인턴'을 봤을 때는 그냥 따뜻한 휴먼드라마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스타트업의 성장통과 시니어의 암묵지 전수를 다룬 조직론 교과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과 조직의 균형
영화 속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이 운영하는 'About The Fit'은 전형적인 하이퍼그로스(hyper-growth) 스타트업입니다. 여기서 하이퍼그로스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조직 구조와 문화가 급변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1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소규모 팀에서 220명 규모로 커진 이 회사는 겉보기엔 성공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업무 프로세스 미비와 의사소통 공백이라는 전형적인 성장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벤 휘테커(로버트 드 니로 분)는 40년간 전화번호부 제조회사에서 근무한 베테랑으로, 단순히 오래 일한 사람이 아니라 조직 문화와 업무 매너를 완전히 체화한 인물입니다. 제가 실제로 스타트업 환경을 경험해 보니, 빠른 성장 과정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바로 이런 기본적인 조직 문화와 업무 예절이더군요(출처: 중소벤처기업부 스타트업 실태조사).
벤이 보여준 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약속 시간 15분 전 도착, 정돈된 복장,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동료에 대한 배려. 이런 요소들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저는 과소평가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조직 자산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암묵지의 전승과 세대 간 지식 교환
조직학에서 말하는 암묵지(tacit knowledge)는 문서나 매뉴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을 통해서만 습득되는 지식을 뜻합니다. 벤이 가진 것이 바로 이 암묵지였습니다. 그는 고객 서비스 직원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 직접 나서고, CEO의 책상 정리를 도우며, 직원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등 매뉴얼에 없는 방식으로 조직에 기여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제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 조직에서는 모든 것을 프로세스화하고 문서화하려 하지만, 실제로 조직을 움직이게 만드는 건 이런 비공식적 노하우라는 걸 벤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벤이 줄스의 어머니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조직 내 관계자본(social capital)을 쌓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관계자본이란 신뢰와 호혜를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조직의 무형 자산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젊은 직원들이 벤에게 준 것도 있습니다. 디지털 도구 사용법, 새로운 업무 방식, 빠른 의사결정 구조. 이것이 바로 세대 간 지식 교환(intergenerational knowledge transfer)입니다. 단방향이 아닌 쌍방향 학습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사회공헌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직 역량 강화 전략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에 따르면, 55세 이상 근로자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2024년 기준 38.4%로 10년 전보다 약 5% p 증가했습니다(출처: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시니어 인력 활용이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조직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주요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직 문화 안정화: 급성장 과정에서 흔들린 기본 업무 매너와 예절 확립
- 멘토링 효과: 젊은 직원들의 경력 고민과 업무 스트레스 해소
- 세대 간 시너지: 디지털 역량과 경험적 판단력의 결합
스타트업 CEO의 딜레마와 의사결정
줄스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외부 CEO 영입 압력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회사가 더 성장하려면 경영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줄스는 자신이 창업자로서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낍니다. 이건 제가 스타트업 업계에서 자주 목격한 전형적인 창업자의 딜레마(founder's dilemma)입니다. 여기서 창업자의 딜레마란 사업 초기의 열정과 비전을 가진 창업자가, 조직이 성장하면서 전문 경영인의 체계적 관리 능력이 더 필요하다는 압박을 받는 상황을 뜻합니다.
벤은 줄스에게 조언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곁에서 지켜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직의 중요한 결정은 결국 리더가 내려야 하고, 외부인은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그 결정을 대신할 수 없으니까요. 벤의 역할은 판단자가 아니라 사운딩 보드(sounding board), 즉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돕는 대화 상대였던 겁니다.
영화 말미에 줄스는 외부 CEO 영입을 철회하고 스스로 회사를 이끌기로 결정합니다. 이 선택의 배경에는 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강점과 회사의 본질을 재확인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결정이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외부 압력이 아닌 자기 확신에서 나온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에 따르면, 창업자가 CEO로 남은 기업이 전문 경영인을 영입한 기업보다 장기적으로 더 높은 혁신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창업자의 비전이 여전히 유효한 성장 단계라면 섣부른 교체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인턴'은 단순히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조직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주는 케이스 스터디입니다. 빠른 성장만큼 중요한 게 조직 문화의 안정이고, 새로운 지식만큼 중요한 게 축적된 경험이라는 것.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스타트업에도 시니어 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됐습니다. 결국 조직은 사람이 만들고,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셈입니다.

참고: 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