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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기억, 엘리엇, 감정, 어른)

by 마음만다이아수저 2026. 3. 26.

처음 봤을 때의 기억

E.T. 를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릴 때 TV에서 하던 걸 우연히 봤던 것 같은데, 그때는 솔직히 E.T. 생김새가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목이 늘어나는 장면이나 손가락에서 빛이 나는 장면 같은 게 신기하면서도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었거든요. 근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서운 게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또 울었습니다.

1982년 개봉한 영화인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스필버그가 어린 시절 부모님 이혼 후 느꼈던 외로움을 이 영화에 담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영화 전체에서 어딘가 쓸쓸한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은데 계속 마음이 당기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엘리엇 역을 맡은 헨리 토마스는 오디션에서 스필버그를 울렸다는 얘기가 있는데, 영화를 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표정 하나하나가 진짜 그 나이 아이 같아서 꾸며낸 연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유명한 SF 영화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면 우주선이나 외계 기술 같은 게 중심이 아닙니다. 그냥 한 아이와 낯선 존재 사이의 우정 이야기입니다. 근데 그게 오히려 더 깊이 남았습니다.

 

E.T.

엘리엇과 E.T. 가 만드는 것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엘리엇이 처음 E.T. 한 테 초콜릿을 놓아두는 장면입니다. 말도 안 통하고 생김새도 다른데, 그냥 과자 하나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거잖아요. 그 장면이 어떤 긴 대사보다 더 많은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낯선 존재를 대하는 방식이 저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엘리엇이랑 E.T. 가 E.T. 가 서로 감정을 공유한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E.T. 가 술에 취하면 엘리엇도 비틀거리고, E.T. 가 아프면 엘리엇도 같이 힘들어지는 식입니다. 그게 단순한 SF 설정 같으면서도, 사실은 누군가와 진짜 연결된다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말 안 해도 느껴지는 것들이요.

드류 배리모어가 엘리엇의 여동생 거티 역으로 나오는데, 당시 여섯 살이었다고 합니다. E.T. 를 처음 보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 실제 반응이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이들 연기가 다 자연스러워서 영화 내내 어색한 구간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건드린 감정

E.T. 가 E.T. 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영화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그 이후 장면들에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특히 E.T. 가 죽는 것 같은 장면이요. 엘리엇이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조용하게 슬퍼서 더 힘들었습니다. 크게 울고불고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거잖아요.

존 윌리엄스 음악이 이 영화에서도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자전거가 달 앞을 지나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영화를 안 봤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 그 장면을 실제로 영화 흐름 안에서 보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냥 예쁜 장면이 아니라 그때까지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이거든요.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어릴 때 헤어진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이사 가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그때는 또 만나겠지 했던 것 같거든요. 근데 못 만났습니다. E.T. 랑 엘리엇이 마지막 인사하는 장면에서 괜히 그 생각이 나서 더 울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본 E.T.

어릴 때 봤을 때랑 어른이 되고 나서 봤을 때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신기한 외계인 이야기였는데, 이번에는 자꾸 엘리엇 엄마 쪽에 시선이 갔습니다. 혼자 아이들 키우면서 집 안에 외계인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게 우습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좀 짠하기도 했습니다.

스필버그가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자기가 원했던 상상 속의 친구 이야기라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외롭고 적응 못 하는 아이가 자기만의 친구를 만난다는 거. 그게 외계인이어서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그 감정 자체는 판타지가 아닙니다. 다들 한 번쯤은 그런 감정 느껴봤을 테니까요.

E.T. 는 그냥 오래된 명작이 아니라 볼 때마다 다른 걸 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나이 들수록 보이는 게 달라지는 영화입니다. 한 번도 안 보셨다면 지금 봐도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서 보는 게 더 많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어릴 적 감성이 그리우신 분,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영화 찾으시는 분, 가족이랑 같이 볼 영화 고민 중이신 분께 진심으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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